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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01, 06:38:45 PM / 16,042 views / 13 comments / 11 recommendations
[인터뷰] 화지, '상아탑에서 불구경 편하게 하던지, 불에 타 죽던지'

HIPHOPPLAYA (이하 힙플) : 2년만의 정규 앨범이다. 공백이 꽤 길었는데 감회가 어떤가?

HWAJI (이하 화) : 글쎄, 후련함 밖에 없는 것 같다. ‘아 나왔다. 이제 다음 거 할 수 있겠구나’



힙플 : 얼마나 준비한 앨범인가?

화 : 자잘한 준비기간까지 모두 합치면 1년정도 되는 것 같은데, 다시는 이렇게 장기간이 걸리는 작업은 안 하려고 한다 (웃음)



힙플 : 원래는 작업속도가 빠른 편인가?

화 : 그건 또 아니다. (웃음) 쓸데없는 완벽주의라고 할까? 원래는 더 심했었는데 그래도 지금은 많이 내려놓은 상태다.



힙플 : 1집때와 비교하면 준비과정은 어땠나?

화 : 더 재미있게 한 것 같다. [EAT]를 통해 풀랭스 앨범에 대한 노하우가 쌓이면서 머릿속에 쌓여있는 쓸데없는 고민거리를 조금 덜어낸 상태로 작업했다. 하지만, 반면에 1집에서 시작한 썰을 매듭지어야겠다는 욕망은 커졌지. 결국 거기까지 해소를 잘 한 것 같다.



힙플 : 일단 [ZISSOU] 발매를 축하한다.

화 : 고맙다. 기분 좋다. (웃음)



힙플 : 1~2집 합본패키지가 예약판매 이틀 만에 품절됐다. 발매하지 않았었던 1집의 힘인가? 감회가 있었을 것 같다.

화 : 1집을 가지고 싶어 하는 사람들, 진짜 그 앨범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좀 계시는 거 같더라. 그래서 말 그대로 스페셜에디션으로 발매했던 건데. 정말 그렇게 다 나가고 나니 기분이 당연히 좋았다. (웃음) 사실, 나도 그 앨범을 가지고 싶은데 내가 가질 수 있는 수량도 없었다. 더 드릴 말은 없고, 사주신 분들에게 진짜 감사하다.





힙플 : 지난 앨범 [EAT]가 2015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랩/힙합 음반상을 수상했다. 당시를 소회한다면?

화 : 정말 내가 탈 거라는 기대 전혀 없이 그 자리에 간 거였기 때문에 상을 탈 때는 그냥 어안이 벙벙했던 것 같다. 무대 위에 올라서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데 머릿속이 하얘지더라 (웃음)



힙플 : 당시 수상소감으로 과정의 미학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화 : 맞다. 지금은 뭐든 인스턴트로 소비하는 시대인데 뭐, 그걸 두고 구조 탓을 하고 싶지는 않다. 단지 시대가 변하고 사람들의 소비패턴에 맞는 시장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인기와는 무관하게 과정에서의 낭만을 좇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있는 건데, 그런 사람들이 존중 받을 수 있다는 거에 감사할 따름이다. 한대음 수상은 그런 기분이 들어서 정말 좋았다.



힙플 : 작품성의 승리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화 : (웃음)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다.



힙플 : 하지만 동시에 차기작에 대한 부담이 생기진 않았나?

화 : 존나 멋있는 척 하는 것 같지만, 그럼 부담보다도 항상 내가 내 작품에 만족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부담, 그게 제일 괴로운 것 같다.



힙플 :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도 그런 슬럼프가 있었나?

화 : 되게 많았다. 사는 게 빡샐 때 찾아오는 기복들 말이다. 물론 지금도 빡새지만.. (웃음) 살다 보면 생기는 이런저런 문제들이 많지 않나, 그런 것 때문에 다운이 되다 보면 창작샘이라는게 그런 멘탈을 그대로 담아내는 것 같다. 실제로 이번 앨범에는 그런 업앤다운되는 삶이 솔직하게 녹아있다.



힙플 : 게시판 피드백은 좀 챙겨보는 편인가?

화 : 일부러 좀 안 보려고 하는 편이다. 그게 칭찬이든 욕이든 거기서 영향 받는 게 오히려 안 좋다는 생각이 들더라. 줏대 있고 솔직하게 내가 가장 즐겁다고 느끼는걸 해야지 그런 피드백들에 영향 받는 게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앨범에 관한 피드백은 잘 안보는 편인데, 그래도 그런 건 봤다. 앨범 예쁘게 찍어서 올린 인증샷들. 그런걸 보면 기분은 굉장히 좋다.



힙플 : 그럼 주변반응은 어떤가?

화 : 앨범이 나오고 지금은 귀를 쉬고 싶어서 주변 사람들한테 굳이 물어보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냥 내가 원하는 대로 나왔다는 그 즐거움을 만끽하는 중이다.



힙플 : 일단, 앨범에 관한 호평이 대부분이지만, 비슷한 무드로 진행되는 구성이 지루하다는 피드백도 있는 것 같다.

화 :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다 잘 맞는 앨범이겠나 (웃음) 어떤 사람들은 나랑 좋은 대화를 하고 웃으면서 얘기 할 수는 있어도 그 사람들이 모두 나한테 술친구가 되지는 않는 것과 비슷하다. 음악도 사람이 하는 거니까 맞는 사람이 있으면, 안 맞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모두를 만족 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은 내가 원하는 만큼의 사람들이 즐거워해준 앨범이고 나는 거기에 보람차게 생각한다.



힙플 : 앨범 타이틀 [ZISSOU]는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 ‘스티브지소와의 해저 생활’에서 따왔다고, 영화가 어떤 영감을 주었나?

화 : 내 인생영화 중에 하나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영화들을 보면 디테일이 굉장히 살아있고, 꽉꽉 채워 담는다는 걸 느낄 수 있는데 나는 작품을 볼 때 그런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고맙게 여긴다. 그러니까 아티스트가 작품에 들인 공들이 느껴지는 순간들 말이다. 그럴 때마다 그것들을 경험하고 있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거든. 아무튼,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하는 감독이고 ‘스티브지소와의 해저 생활’은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좋아하는 영화인데, (사실 감독 이전에 이 영화의 주인공인 빌 머레이(Bill Murray)의 빅팬이다)

이 영화는 자크 쿠스토라는 해양 다큐멘터리 감독의 인생을 모티브로 한 이야기다. 영화를 보고 나서 든 생각은 정말 다보고 죽고 싶다는 거였다. 세상은 넓고 생은 너무 짧기 때문에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영화 안에서 스티브지소라는 인물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에 가장 가깝게 살다간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었다.





힙플 : 앨범의 전곡을 팀메이트 영 소울이 프로듀싱했다. 그에게 프로덕션을 일임한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화 : 가장 빨리 되니까! (웃음) 이 친구도 작업량이 엄청난 스타일인데, 항상 편하게 가서 ‘야 이거 오늘 꽂히는데 이걸로 작업해보자’ 할 수 있는 작업물들이 늘 쌓여있다. 그리고, 한 명과 호흡을 맞추다 보면 확실히 어떤 통일성을 가져갈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그 통일성이 좀 전에 질문한 것처럼 어떤 사람들에게 지루함으로 다가갈 수 있겠지만 뭐, 항상 똑 같은 음악만 할 것도 아니고 딱히 신경 쓰지는 않는다.



힙플 : 영 소울의 랩을 들어본 지 좀 되었다. 둘의 랩 케미(?)를 그리워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 라디오스타(Radiostarr)의 작업물은 언제쯤 들어볼 수 있나?

화 : 나도 그렇고 그 친구도 성격이 재미없어지면 절대 안 하는, 그러니까 시켜도 못하는 스타일이다. 그런데 걔가 느끼기에 랩을 해서 얻는 쾌감보다 프로듀싱을 할 때의 즐거움이 더 크다고 하더라. 랩을 하지 않는다고 슬프거나 그런 건 없다. 어쨌든 시간은 없고 좋아하는 걸 하려면 안배를 해야 하니까.



힙플 : 그럼 라디오스타라는 팀은 사실상 이제는 원프로듀서 원MC 팀으로 굳혀진건가?

화 : 글쎄 잘 모르겠다. 우리가 그 이름을 가지고 앞으로 무슨 짓을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여러 가지 재미있는 시도들을 해볼 거고, 어쨌든 다 도전하고 죽으려고 한다. (웃음)





힙플 : 앨범 아트워크 얘기를 안 할 수 없다. 아트워크를 그려준 배즈본에 대해 소개해달라.

화 : 옛날에 라디오스타로 나왔었던 [Villainaire]라는 미니앨범이 있는데, 그 앨범의 커버를 그려줬던 분의 소개로 알게됐다. 박재광씨라고.. 지금은 촉망 받는 만화가인데.. (웃음)

아무튼, 배즈본이라는 친구가 어글리덕(Ugly Duck)의 싱글 커버를 멋지게 그려준 것도 보고해서 의뢰를 하게 됐다. 제천에 있는 온천으로 여행을 가서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나눴는데, (웃음) 굉장히 재능 있는 친구고, 내가 생각했던 걸 그림으로 잘 구현해줘서 고맙게 생각한다.



힙플 : 싱글 곡들의 커버 이미지들이 [ZISSOU]의 전체 아트워크로 이어지는 발상이 굉장히 참신했다.

화 : 일단, 뭐 이건 이런 뜻이야 저런 뜻이야 하기보단 그림으로서 예뻤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첫 번째였다. 그림이 점점 줌아웃이 되는 건데, 앨범 중심에 있는 테마가 ‘큰 차원에서 바라보는 세상’이었기 때문에 그런 내용들을 담고 싶었다. 그걸 너무 잘 담아준 배즈본한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다.





힙플 : 아트워크에 지구를 내려다보는 모습이 이번 앨범에서 화지의 시점인 것 같은데, 조망효과라고 하나?

화 : 맞다. 조망효과라는 건, 말하자면 우주비행사 같은 사람들이 지구 바깥으로 나갔을 때 느끼게 되는 의식의 전환 같은 거다. 상상해봐라 처음으로 지구 밖에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상황을. 지구 주변에는 무한대로 아무것도 없고, 우리는 이 얇은 산소막 덕에 살고 있는 작은 존재인지를 느끼게 되는 거다. 60억 인구가 들어있는 우주선에 살았던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무한대처럼 펼쳐져 있는 어둠을 보면서 이 밖으로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달았을 때 찾아오는 의식의 업그레이드 같은 거지. 이번 앨범은 그런 걸 느끼고 싶은 마음으로 만들었다. 유명세에 대한 비유를 하자면, 유명세 자체가 좋다기 보다, 유명해지고 높은 위치에 올라갔을 때 그 위치에서 내려다보는 세상에 대한 이해도가 커지지 않나. 한 차원 높은 곳으로 의식의 주파가 맞춰지듯이.





힙플 : ‘상아탑’을 듣다 보면 어쨌든 지금의 위치나 현실에 대해서는 상당히 비관하고 있는 것 같다. 흔히 속세를 떠나 즐기는 경지에 일컫는 사람들을 상아탑에 빗대서 표현하지 않나

화 : 사실 ‘상아탑’같은 곡이나 이런 모든 것들이 나를 비관적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은데, 사실 나는 막상 즐겁게 살고 있거든. 그러니까 그런 식의 세상의 멸종을 암시한다 던지 하는 가사들은 사람들의 기억에 더 남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장치였던 것 같다.

그리고, ‘상아탑’은 어느 정도 상아탑이라는 말에 대한 비꼬는 표현이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아이보리 타워라고 하는데, 사실 그건 말 그대로 근데 ‘아이보리 타워에서 좀 내려와!’ 할 때 쓰는 부정적인 뉘앙스가 담겨있는 표현이거든. 결국, 상아탑에 올라서 불구경 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그것만이 답이 될 수는 없는 거다. 결국, 탑에 갇히게 되면 세상을 느낄 수 있는 기회는 적어지니까 말이다. 어쨌든, 지금 세상이 이렇게 잔인한 세상이다. 상아탑에 올라가서 불구경 편하게 하던지, 불에 타 죽던지 해야 하니까.. (웃음)



힙플 : ‘상아탑’의 특정 구절은 본인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던 캠페인 ‘Do The Right Rap’을 겨냥한 듯한데?

올바른 랩 이딴 거 씨발 됐고 니 챙겨
나는 백퍼 재미 위주, 아님 왜 여기 있겠어? – 상아탑


화 : 근데 그건 ‘Do The Right Rap’ 벌스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애초에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그 캠페인의 취지 역시 엄격하게 ‘올바른 랩 해야 돼, 너네 이거 아니면 존나 틀렸어’라고 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다.



힙플 : 앨범의 참여진이 많지 않다. 곡들마다 참여 뮤지션을 선정한 기준은 무엇인가?

화 : 뭐 기준이라고 하긴 우습고, 팔로형이랑 상구형 같은 경우는 내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내 세대의 랩퍼들이다. 그러니까 내가 고등학교 때 힙합 공연을 가게 되면 보는 형들 말이다. 그런 형들과 항상 작업을 같이 하고 싶었다.





힙플 : 딥플로우가 라디오에서 ‘정신 똑바로 박힌 랩’이라는 말을 했다 화지도 정신 똑바로 박힌 랩퍼 중 한 명이 아닌가 싶은데.. (웃음)

화 : 내가 랩에서 정신이 똑바로 박혔는진 모르겠지만, 뭐.. 내가 정신 똑바로 박힌 놈은 아닌 것 같다. 음.. 절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웃음) 근데, 형이 뭘 말하려는 건지는 알 것 같다.



힙플 : 앨범 작업 중, 영화 외에 가장 큰 영감이 된 것들이 있나?

화 : 뭐든지 자연스러운 것 같다. 내가 좀 애 같은 면이 있어서 주변에 딸랑딸랑 소리 나는 게 있으면 이거 잡았다 저거 잡았다 하는 편이다. 아무튼, 관심이 가고 안가고 하는 것들이 있는데, 최근에는 진짜 이거 들어봐야 되겠다 할만한 음악이라 던지 그런 건 딱히 없었던 것 같다. 한국힙합에 있어서는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뭔가 만족이 안 되더라. 듣기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오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힙플 :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음악들에 관한 얘기인가?

화 : 맞다. 근데 말초적인 것들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나도 말초적인 거 되게 좋아하거든. 말초적으로 쳐먹어서 살도 이렇게 막 찌는 거다. (웃음) 뭐, 어쨌든, 내가 말하는 건, 뭔가 어떤 세계관에 확 동기화 되어서 빠져들었다고 할만한 앨범이 별로 없었다는 얘기다. 말이 좀 우습지만, 지적으로 머리가 충족이 되지 않는 느낌이랄까? 내가 생각하는 랩은 굉장히 인텔리전트한 음악이고, 말로 할 수 있는 최상의 노래인데 말이다.



힙플 : 힙플 : 과거 인터뷰에서 한국 힙합 씬을 누리는 사람들이 문화적인 이해가 많이 없다는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몇 년이 지난 지금 느끼는 생각은 어떠한가?

화 : 글쎄, 잘 모르겠다. 그게 강요될 수는 없는 부분이니까. 다만, 선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한다. 나도 그렇고 이곳에서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음악을 떠나, 사는 방식에 있어서 멋있게 살고 그런 선례가 된다면 좋아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상아탑’의 가사처럼 그것 또한 오만일 수도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아닌 것들이 있는데 어쨌든 그건 내가 바꿀 수 없는 거기 때문에 나부터가 선례가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힙플 : ‘꺼져’와 ‘그건 그래’는 1집 수록곡 ‘새로운 신’의 후속편 같은 느낌이다. 친구 혹은 동창생과의 대화 상황을 가사의 설정으로 계속 활용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화 : 작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내 핸드폰이 내 가사 노트인데, 요즘에는 다 동기화되고 편하지 않나, 그래서 걸어 다닐 때 생각나는 것들을 그냥 그 자리에서 쓰는 편이다. 내 앨범에 핵심이 되는 주제의식이 있으면 그거를 잘 설명할 수 있는 장치나 소스들이 살면서 문득문득 떠오르기 때문인데 그리고, 그건 백퍼센트 친구들 혹은 동창들이 모여서 취해서 개소리하는 술자리인 경우가 많다. ‘그건 그래’ 역시 그런 식이었다. 동창생들이 모인 술자리에 갔는데, 그 때의 존나 재미없는 순간들이 내 앨범을 표현하는 장치로 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시의 일들을 적어놨고, 그때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묻어난 것 같다.



힙플 : UGK에서 언급하는 개미와 배짱이들은 동창생들과 화지로 대변되는 두 그룹인 것 같다.

화 : 굳이 이분법적으로 그렇게 세상을 나누기는 싫지만, 개미가 있으면 배짱이가 있기 마련이다. 뭐 그건, 옛날부터 전통적으로 들어왔던 얘기니까. 어쨌든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걸 얻기 위해 살아 가는 거라고 본다면 그 과정에서 각자만의 방식이 있는 거겠지. 배짱이들도 그들이 사는 방식이 있는데, 내가 타고난 거기도 하지만, 이 사람들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이건 정말 좋은 뜻으로 얘기하는 건데 우리는 타고난 한량이란 말이다. 근데 이 배짱이들의 장점이 뭐냐면 똑같은 순간에서도 개미들보다 훨씬 더 즐겁게 즐길 수 있다는 거다. 그건 자부할 수 있다. 왜냐면 우리는 순간의 쾌락을 항상 추구해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힙플 : UGK가 얘기가 나와서 곡 제목을 UGK로 지은 특별한 의미가 있나?

화 : 일단, UGK를 되게 좋아하고, 영소울이 비트를 줄 때의 비트제목이 ‘UGK’였다. 이게 전형적인 UGK 느낌의 곡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남쪽의 그 리듬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래서 곡을 썼는데, 곡의 내용이 ‘100 유지해’이기도 하고 약자가 ‘Underground King’이기도 해서 제목으로도 좋다 싶었다. 사실, 제목 고민은 그렇게 많이 하지는 않은 것 같다. (웃음)



힙플 : ‘100 유지해’란 구절은 ‘Keep it 100’라는 영어식 표현을 의미 그대로 옮긴 건데, 그런 식의 한글 표현에 대한 시도가 재미있게 느껴졌다.


화 : 생색을 좀 내자면 그래서 이게 어려운 작업인 거다. (웃음) 그 표현을 이렇게 가지고 왔을 때 이게 무슨 국뽕이 되면 안되지 않나 (웃음) 그 느낌 그대로 살아야 성공한 건데, 만약 그렇지 못했을 때는 샤프한 재미를 죽이게 되는 거거든. 우리나라 전통적인 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내가 원하는 건 영어 표현의 날카로운 토씨까지의 구현이다. 예를 들면 센스형은 그런 방면으로 엄청나다. 말 그대로 완성된 한국식 표현들이고, 때문에 분명 우리나라 말인데 들어도 존나 멋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힙플 : 한영혼용 랩에 대한 강박이라고 하면 좀 과장인가? (웃음)

화 : 강박이라기 보다는 그냥 재미있어서 하는 거다. 그리고 이게 더 어렵다. 확실히 그냥 영어로만 하면 굴러가는 소리에 쌔고 영어만의 발음이 있기 때문에 그루브 형성이 잘 되는데 한글로 그걸 표현하려면 훨씬 더 어려운 게 있다. 이건, 내 나름의 도전의식 같은 거지 (웃음)



힙플 : [ZISSOU]의 트랙들을 관통하는 두 가지 정서가 있다. ’쾌락주의’와 ‘허무주의’인데, 언뜻 보면 대립할 것 같은 개념인데도 앨범 속에서 공존하고 있더라

화 : 나는 허무주의 때문에 쾌락주의가 따라 온다고 항상 생각한다. 과학자들이 자살을 많이 하는 이유가 결국에는 생각의 생각의 생각의 끝을 끝까지 가다 보면 모든 질문의 끝에 ‘야 X발 그럼 난 뭔데?’가 있어서라고 하지 않나, 존나 큰 우주에서 하염없이 작은 나의 존재는 뭘까 하는 그런 허무주의에 빠진다는 거다. 아까 조망효과에 대해 얘기한 것도 이거와 비슷한데, 그렇지만, 난 그런 허무주의에 빠질 때 반대로 좀 더 큰 그림에 기대서 지금의 걱정들을 내려놓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허무주의가 쾌락주의를 동반하는 거지. ‘어차피 내가 하는 거 다 부질없다’라는 생각이 ‘그럼 내가 할 수 있는 쾌락은 다 누리다 가자’가 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내가 그렇게 살았었는데, 지금은 그 벨런스를 많이 찾은 상태다.



힙플 : [ZISSOU]에는 몇몇 곡에 걸쳐 공통적으로 나오는 구절들이 있다. 먼저 “세상이 미친 게 아니야.”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나?

화 : 무슨 뜻으로 썼는지에 대한 대답은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가사를 쓸 때 최대한 안 꼬아서 쓰고 어느 정도는 직선적으로 얘기하려고 하는데 결국에는 사람들이 상상하기 나름이니까.

자라면서 어떤 자아가 형성이 될수록 조망효과의 일부처럼 자신의 자아만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는 자신의 자아가 이 세상 어디에 어떻게 위치해 있는지에 대한 걸 알게 된다. 그 전환이 누구나 다 거치는 거라고 했을 때 어떤 생각이 들더라 결국, 이 세상이 미친 게 아니라, 내가 미쳤다고 생각하는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발상이 허무주의에 빠지는 발상이라 조심해야 하지만 (웃음) 아무튼, 이 구절은 그런 발상에서 나온 구절이다.

질문에 허무주의와 쾌락주의가 대립하는 것 같다고 말했듯이. 내가 듣기에도 재미있는 게 분명히 그랬던 것 같다. 그런 두 관점의 대립이 계속 되면 결국에는 내가 생각하는 열반에 가까운 거를 찾게 되는데, 이 앨범은 그 과정을 담았다고 할 수 있다.



힙플 : 1년안에 굉장한 세계관을 펼친 것 같다 (웃음)

화 : 힘들지만, 기분 되게 좋을 때도 있었다. 중요한 건, 어쨌든 이런 작업은 다시는 안 할거다. (웃음)



힙플 : “우린 우주의 작은 점”이라는 구절도 무려 세 곡에서 등장한다. (’Ill’, ‘Gypsy Girl’, ‘이르바나’)

화 : 마찬가지로 조망효과에 대한 관점에서 우리는 진짜 우주의 작은 점이라는 발상이었다. 그런 발상으로부터 허무주의라던지 아니면 쾌락주의, 열반으로 향하는 양 갈래길이 펼쳐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힙플 : 그런 생각들에 발단이 된 영감들이 있나? 왠지 평소에 우주에 관한 다큐멘터리 엄청 볼 것만 같다.

화 : 글쎄.. 그거 재미있다. 옛날에 칼세이건이 먼저 했었고, 닐 타이슨이 복각한 코스모스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인데 어딘가에 있을 거다. 티비 다시보기 이런 거에 무슨 오바마가 추천한 특집 다큐.. 이런 식으로 있을 거 같은데, 그걸 보는걸 추천한다. (웃음) 그거 말고도 원체 옛날부터 별이 많은데 살아서 어릴 때부터 어딜 가도 올려다보면 항상 하늘에 별이 가득 있었는데, 사람이 그런데 살다 보면 이런 끼가 생기는 것 같다. (웃음)



힙플 : ‘서울을 떠야 돼’에서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화지가 정의하는 ‘21세기 히피’가 ‘20세기 히피’와 다른 점이 궁금하다.

언뜻 비슷해 보여도 우린
절대 아냐 20세기 히피
요새 보면 욕심 그릇 큰 베짱이가 군림
판은 뒤집혔지 이미 - 서울을 떠야 돼


화 : 돈맛 본거? 21세기 히피는 돈이 있어야 한다. 말하자면 비싼 삶의 방식인 거지. 그래서 그 삶을 유지하려면 공격적으로 쟁취를 해야 되는데, 그거를 아는 사람들을 나와 내 주변의 친한 친구들은 21세기 히피라고 부른다.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정의한 건데, 이 노래도 거기서 파생된 노래다.



힙플 : 공격적으로 쟁취해야 되는 거.. 히피로 살기 쉽지 않을 것 같다. (웃음)

화 : 음.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걸 아는 사람들이다. 말 그대로 유지를 해야 누릴수 있는 거 아닌가, 그걸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인 것 같다.





힙플 : 화지에게 서울은 어떤 공간인가?

화 : 서울? 답답하다. 옛날에 대학 다닐 때는 방학에 한국 들어오면 진짜 놀러 오기 좋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에 몇 년 있어보니까 이제 알겠더라고. 놀러 오기에만 좋은 곳이라는걸.. 일단, 빡빡하고 사람들은 여유 하나도 없고, 예의도 없다. (웃음) 그렇게 살다 보면 가끔씩은 서울을 떠나서 상쾌하게 기분 전환을 해야 하는데, 안 그래도 내일 시골에 내려갔다 올 예정이다.



힙플 : 이 앨범에선 ‘바하마’가 서울의 대척점 같은 곳인데, 왜 바하마인가?

화 : 막연한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웃음) 그게 내가 어렸을 때 꽂힌 단어인데, 지금 막상 알아보니 따지고 들었을 때, 그렇게 천국 같은 곳이 아니더라 (웃음) 만약 선택하라면 거기 말고 나는 다른데 갈 것 같거든.. (웃음) 근데, 바하마는 어릴 때부터 내 머릿속에 오아시스 같은 곳이었다. 왠지는 모르겠다. 어릴 때 티비에서 어떤 미국채널을 봤다던지 이러지 않았을까? 뭔가 야자수가 깔려있고, 바다가 펼쳐져 있는 그런 장면들이 어렴풋이 남아있거든. 어떻게 보면 되게 개인적인 단어긴 한데, 그냥 바하마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아는 곳이니까. 그런 식으로 나한테 개인적인 단어가, 사람들한테 어떤 의미로 공감이 되는 게 재미있었던 것 같다.



힙플 : ‘나르시시스트’에서는 이슈에 민감한 소셜미디어 속 목소리들을 나르시시즘이라며 조롱한다. 어떤 계기로 이 곡을 쓰게 됐는지 궁금하다.

화 : 그냥 내가 나르시시스트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느정도 그런 기질이 없으면 하기 힘든 직업이겠다 싶기도 하고.. 더군다나 우리는 어쨌든 이거밖에 없지 않나. 그리고, 더 깊게 들어가서는 어떤 생각까지 했냐면 선한 사람의 선행들, 예를 들어 이웃집에 떡을 돌리고 남 몰래 하는 선행들도 어떻게 보면 다 일종의 나르시시즘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이것도 어느 정도 감정의 다운타임에 나온 발상이긴 한데, 결국에는 그게 지금의 우리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걸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힙플 : 어떻게 보면 [ZISSOU]의 준비과정이 본인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고 답하는 과정의 연속이었을 것 같은데, 마지막 트랙 ‘이르바나’ 같은 경우는 사전적 의미로 열반이다. 마지막 트랙에 어떤 열반을 했는지 궁금하다.

화 : 해답이라고 할만한 건 당연히 없다. 내가 예수, 부처도 아니고 얼마나 살았다고 거창한 해답을 내리겠나 다만, 마음은 편하다. ‘내가 올바르게 내가 원하는걸 좇으면서 가고 있구나’라는 확신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나한테는 일종의 작은 이르바나였던거지.



힙플 : 딥플로우의 [양화]에 수록되어 있는 ‘열반’이라는 트랙에 ‘좆같은걸 초월한 뒤에 남은 열망은 영감을 채워 만들 명반밖에 없다’라는 라인이 있다. 이번 앨범의 화지와 그 라인이 굉장히 오버랩 되더라

화 : 맞다. 그래서 내가 항상 상구형의 팬이다. 그냥 죽는 순간에 진짜 후회가 하나도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거 모두 시도라도 한번 해보고 죽고 싶다. 열반을 통해서 뭔가를 쟁취할거라기보다는 그냥 열반 자체를 원하는 거지. 마음의 평화를 지킨 상태로 이 세상을 뜨고 싶다.



힙플 : 마지막 질문이다. 화지 본인이 직접 청자들에게 앨범의 감상 포인트를 짚어 준다면?

화 : 그런 거 없고, 듣고 싶은 대로 개인적인 공간이든 어디서든 접하시고 싶으신대로 하십쇼. 다만, 그냥 처음부터 끝까지 내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첫 곡부터 끝까지 한번쯤은 돌려봐주면 좋을 것 같다. 그 이상은 부탁할 수가 없다.


인터뷰 | 이승준, 차예준 (HIPHOPPLAY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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